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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물] 강성재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이사장을 만나다

한은경 기자 | 기사입력 2023/01/10 [23:48]

[인터뷰, 인물] 강성재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이사장을 만나다

한은경 기자 | 입력 : 2023/01/10 [23:48]

[뉴스동포나루 인물인터뷰⑥-서울 여의도, 강성재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 이사장] 

 

한국문화와 경제를 잇고 문화경제교류를 위해 30여년간 한 길을 걸어온 강성재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 이사장이 정재계 문화예술계와 지역언론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의 아름다운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노하우를 풀어놨다.

 

이번 인터뷰⑥는 10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 사무실에서 강성재 이사장과 진행했다. "문화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그. 한길을 걷고 성공적 삶이 주변에 전파할 수 있는 오피니언리더의 삶이 무엇인지를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가 풀어놓은 그만의 삶의 궤적을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본다.

 

▲ 강성재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 이사장. 10일 여의도. [사진촬영 및 취재=한은경 기자]   © 뉴스동포나루

 

Q.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을 소개해 달라.

진흥원은 문화예술인, 경제인, 청소년 교류는 물론이고 한중일 중심의 인적교류를 통한 문화교류, 경제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있는 민간교류 네트워크이다. 일본유학시절 1990년대에 일본 히로시마에서 순수 민간단체 한일문화교류센터로 시작됐다.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편견을 불식시키며 한국적 관점에서 이해와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설립하게 된 센터이다.

 

한일문화교류센터 설립 20주년 2013년에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문화 경제인 교류 등 많은 사업을 펼치고 있다. 

 

Q. 사업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

진흥원은 문화적으로 문화콘텐츠 개발, 문화예술인 활동 주선, 각종 행사개최 등이 있고, 경제적으로는 기업체 수출입 알선, 투자유치, 상품홍보 및 판로개척, 기술제휴 등 경제인들간 교류도 중점 사항으로 임하고 있다. 히로시마에 한국어학교를 최초로 만들었다. 일본인들에게 한국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문화도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였는데 그를 당시에 이루기도 했다. 처음에는 풀뿌리 운동처럼 미미하게 시작했던 일들이 노력의 대가처럼 나중에는 이렇게 커지게 됐다. 그외 아시아문화경제신문과 아시아인터넷뉴스를 운영하며 아시아홍보 콘텐츠를 제작 유통하고 있다.

  

Q. 아우마당포럼 사업은 무엇인가?

아우마당포럼은 매월 정기모임을 하면서 저명하신 분을 초청하여 명사특강을 함께 진행하고 있고 분기별로 전국 역사문화탐방을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는 우리마당'이라는 이념아래 아시아 지역 국가의 문화경제와 정치경제 분야의 상호정보 공유와 교류확대를 추진중이다. 아우마당포럼은 문화경제 분야에서 새로운 아시아의 꿈을 실현하고자 해외로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아시아문화대상을 제정하여 각 분야에서 공헌이 큰 이들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Q. 올해 3월에서 아시아문화교류사업 30주년을 맞이한다. 준비하고 계신게 있으신가? 

지역발전위원회를 분과별로 구성하고 있다. 아우마당포럼과 함께 문화진흥원이 사단법인으로 승격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오는 3월로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앞만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함께 웃고 울어준 아시아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의 힘이 있기에 오늘 이 시간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이 30주년을 기점으로 크게 도약하고 다시 또 도전할 수 있도록 열심을 다할 생각이다. 한, 중, 일 아시아 무대뿐만 아니라 ‘내 지역 문화 세계화’ 깃발을 들고 아시아 네트워크 플랫폼인 ‘우리 지역발전 위원회’를 가지고 힘차게 나아가고자 한다. 

 

Q. 강성재 이사장님 자신에 대해 좀 더 소개해 달라. 

나는 고향이 영암인데 내고향이 무척 자랑스럽다. 차별 없이 온 세상을 비추는 월출산의 달과 영향력을 일본에까지 발휘한 왕인박사의 고장 영암이다. 대한민국의 자랑인 왕인박사는 고대 아스카문화의 시조로 일본에서 더 추앙받는 큰 인물이다. 왕인박사의 고향이 영암이기에 그의 진정한 후예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자랐다.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서슴없이 걸으며 나는 일본에 진출하려는 한국의 연예인이나 기업인의 통로가 되어 성심성의껏 연결해주었다. 문화예술인과 경제인, 사회단체 교류는 물론, 유명 지자체 관광지에 일본 관광객을 유치시키면서 달려온 30년이다. 상생하는 일이 너무 좋았고  이 모든 일들이 내 적성에 맞았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낯선 사람들이 나의 중재와 소개로 서로 친하게 되는 것을 보면 신이난다.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는데  당시 가족애가 부족한 일본학생들에게 한국 학생들의 가족애와 어른을 공경하는 장유유서를 전했다. 일본 청소년들에게 바르고 건전한 정신을 심어주는 강의라고  소문이 나면서 강의요청이 물밀 듯 들어왔다. 

 

Q. 전에 이사장님 뵈었을 때에 사모님께서 일본분이시라고 말씀하셨었다. 잠시 소개해달라.
아내를 만나면서 내 인생 최대의 전환점을 맞았다. (아내)사와코는 그때나 지금이나 품위 있고 착한 여성이다. 아내와의 만남과 결혼은 나를 문화교류 활동에 더욱 열의를 불태우게 했다. 한국인과 결혼은 죽어도 반대한다는 아내의 부모님 덕분이었다. 한국인은 무조건 싫다는 타협 불가능한 반대 앞에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켜야겠다는 결의를 뼛속에 새겨 넣었다. 나는 아내 덕분에 일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은 후로 우정만이 교류의 지름길임을 더욱 확신했다. ​


고마운 내 아내와의 우여곡절 일본 생활은 20년 전 한국어판 "나는 착한 일본 여자가 좋다"와 10년 전에 출판한 일본판"韓流騎士"《한류기사》 책을 통해 오픈했다. 책에도 밝혔지만 아내가 한국인과 제일교포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희열은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Q. 향후 계획을 말씀해 달라. 

나는 평소 "문화는 힘"이라는 김구 선생의 말을 좋아했다. 나도 “오직 갖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 과거 30년 동안은 민간교류의 비법을 터득하고 배우고 익힌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그 비법을 풀어 아시아 전역과 세계 각국에 한국의 문화를 알리며 교류하고 싶다.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 30주년을 기해서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전국 방방곡곡 우리 지역발전 위원회를 세우고 경영하고자 한다.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강성재 이사장은 진흥원 이사장 외에 아우마당포럼회장, 아시아문화경제신문 발행인, AsiaceNews 회장, Colie 대표이사로 있다. 그의 저서로는 한류기사, 젊은 한국을 위한 긴급제안, 나는 착한일본여자가 좋다.  일본문화와 함께 배우는 일본어회화, 나의 아내는 일본인(일본어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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